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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그때그사람! 디아2 헬게이트의 스톰을 기억하시나요?동고동락한 서광록 이사님과 함께
2014.01.09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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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라 게임즈 서광록 기획관리 팀장

[인터뷰]그때그사람! 디아2 헬게이트의 스톰을 기억하시나요?동고동락한 서광록 이사님과 함께!

누구보다 독특한 삶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게임 업계의 취직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서광록씨는 '디아블로'와 얽힌 인연으로 게임 업계에 들어와 방송부터 강의, 기획, 마케팅까지 다방면에 활약했다. 게임 사이트의 운영자를 시작으로 방송 BJ, 해설자에 강사를 넘어 라이브 서비스까지 말이다.

그의 인생사는 나비효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보다 '디아블로'를 조금 더 좋아했을 뿐인데 삶의 터전이 게임 업계로 연결될지 누가 알았을까. 이번 인터뷰는 순조로움과 험난함이 뒤섞인 그의 과거사를 중심으로 풀어갔다. 그저 '디아블로'를 너무나 좋아했던 유저의 유별난 인생사를 소개한다.

 

인생의 갈림길? '디아블로'만 보고 걸었다
 


서광록씨의 인생은 '디아블로'에서 시작됐다.

'워크래프트2'와 '디아블로'를 정말 많이 했다. 당시에 인터넷이 없어 랜 플레이 위주로 게임을 즐겼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같이 할 사람이 없더라. 다들 뭘 하고 있나 궁금해서 주위를 둘러봤더니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었다. 게임은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할 때 재미는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같이 즐기기 위해서 '스타크래프트'를 배웠고 플레이 시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아침 해를 보는 나날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주야장천 한우물만 파다보니 실력은 좋아졌고 레더순위가 상당히 높아졌던 기억이 난다.

'스타크래프트'를 배운 이유가 '디아블로2'를 기다리며 할 게 없어서였는데, 출시일이 계속 연기되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스타크래프트'도 핵이 나와 게임의 흥미를 잃어가던 시기와 겹쳐지자 이럴 바에 차라리 사이트를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사이트 구축은 '스타크래프트'의 길드를 시작으로 '디아블로'와 '레인보우 식스' 등을 덧붙였다. 사이트를 운영하며 사람들의 방문이 점차 늘어나는 것을 보고 재미를 느끼던 순간, '디아블로2'가 조만간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99년 8월에 '디아블로2' 사이트를 별도로 만들어 버렸다. 그 해 E3에서 공개된 포스터를 응용해 사이트 이름은 '헬게이트'로 지었다.

'워크래프트2'와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까지 지겨워진 서광록씨는 '디아블로2'를 기다리며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E3에 공개된 포스터의 멋스러움을 간직한 '헬게이트'란 명칭의 사이트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인생의 변환점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이트에 정보가 없다 보니 외국 사이트를 뒤져가며 새로운 정보를 번역해 실시간으로 옮겼다. 지금 생각하면 커뮤니티 사이트의 초기형과 비슷하게 볼 수 있겠다. 아무튼 '디아블로2'가 99년 겨울에 나왔다면 이러한 수고를 덜 할 수 있었을 텐데, 출시일이 연기되면서 사이트 자료는 점점 늘어나고 정보량은 이미 공개된 게임과 엇비슷하게 갖춰졌다.

'디아블로2'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더라. '디아블로2'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이트가 유명세를 타다 보니 게임 전문 잡지에서 연락이 와서 공략과 프리뷰, 리뷰 등을 쓰기도 했다.

 

▲ '디아블로2'가 인생을 바꿨다


서광록씨가 만든 헬게이트(사이트 명)를 중심으로 '디아블로2'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했으며, 그는 국내에서 '디아블로2'를 가장 잘 알고있는 인물로 부상했다. 그런 그에게 선뜻 만남을 요구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디아블로2'의 국내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업체였다.

'디아블로2'를 기다리며 사이트를 운영하던 중, '디아블로2'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시디빌이란 회사에서 만나보고 싶다는 메일이 왔다. 사이트를 봐보니 '디아블로2'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고 번역도 잘하는 것 같다며 일을 같이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더라.

처음으로 맡은 일은 메뉴얼 번역이었다. 대표가 2000년 E3를 다녀올 때까지 번역을 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일이 시작됐고 한빛소프트가 '디아블로2'의 판권을 시디빌에게서 사버리는 바람에 나의 직장도 자연스레 한빛소프트로 바뀌었다. 이곳에 와서 런칭쇼 준비와 마케팅, 번역 등을 하기 시작했으며, 송진호 부장님의 밑에서 일을 하다가 6월 29일이 발매일이었는데, 런칭쇼를 진행하고 게임의 소개를 맡았다.

그의 인생은 한빛소프트의 송진호 부장님을 만나면서 갈림길이 아닌 하나의 길로 단축됐다. 어떤 이유로 그에게 그에게 런칭쇼의 진행과 게임의 소개를 맡겼는지 이유는 모른다. 하나 단 한번의 기회가 그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시연 장면을 일일이 다 설명하며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모든 매체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고 다수의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게임의 상세 소개를 맡았다. 아울러 한빛소프트에서 진행하는 대회의 기획과 해설까지 진행했으며, '디아블로2'의 흥행으로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와 해설자도 겸하게 됐다.

'디아블로2'의 팬사이트 운영자가 런칭쇼를 기점으로 인기 스타가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무협에서 '환골탈태'라 하던가? 그때 정신없이 바빠서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 '디아블로2' 론칭쇼 시연


물론 '환골탈태'의 과정에는 고난이 함께했다. '디아블로2'의 성공을 위해 두발 벗고 뛰어 나선 서광록씨는 그날을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디아블로2'의 런칭을 준비할 때 출시되면 무조건 잘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큰돈을 들여서 하는 거여서 내부적으로 항상 불안감이 맴돌았다. 또 그땐 롤플레잉 장르가 각광받던 시절도 아니었다. 믿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파밍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니 노가다와 비교하더라.(웃음)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 내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면서 PC방 사장님 연합회를 모셔놓고 가장 화려한 장면을 모아 시연회를 하기도 했다. 무조건 선주문하셔야 한다고 안 그러면 후회한다면서 말이다.(웃음)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디아블로'를 벗어나야 살아? 기획자의 길로 가자
 


'디아블로2'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서광록씨,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해설과 방송을 겸하면서 열심히 살았으나, 앞날이 밝아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디아블로'를 벗어나 기획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 마땅히 배울 곳이 없던 시기인지라 독학을 준비한다.

디아블로 해설과 방송 등을 겸하고 있었는데 장래가 그리 밝지 않아 기획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게 기획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책으로 운을 떼었다. 그때 '워크래프트3'의 에디터가 너무 잘돼 있어 이것저것 만들어 보면서 많이 배웠다.

공부와 병행했던 해설은 '워크래프트3'를 맡게 되면서 2007년까지 한 것 같다. 그러다가 2008년도 초에 '디아블로2'를 런칭하면서 인연을 쌓았던 송진호 부장님이 '헬게이트 런던'을 살려보자며 함께 하기를 제안했다. 그래서 다시 한빛소프트로 들어가는 절차를 밟던 중에 사업적 문제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게 기억난다. 뭐 지금 생각하면 '과연 내가 동참했다 하더라도 살릴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장래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찰나에 현업에 계신 분들의 추천을 받아 게임 기획쪽으로 강의 생활을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블로그, 기획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현역 개발자들과 친분을 쌓아 가능했던 일이다.

방송 BJ와 해설에서 기획을 가르키는 선생님으로 둔갑한 서광록씨. 그 당시를 생각하며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떠올린다. '문서는 단지 도구일뿐, 자신이 만들어 봐야 설명도 잘할 수 있다'는 것. 독학으로 기획자의 길을 공부했던 그는 자신의 공부 방식을 고스란히 교육과정에 실었다.

문서가 게임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문서는 도구로서 역할을 할 뿐, 목적이나 결과물이 아니니까. 직접 무엇인가 만들어봐야 문서로 정리도 잘한다. 내가 강의를 할 때 2년 과정이다 보니, 2달은 이론 수업을 하고 '워크래프트3' 에디터로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보게 했다.

에디터는 리소스가 제한돼 있다. 이것은 실무도 마찬가지다. 경력자들은 제한된 리소스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통해 요령껏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모든 것을 새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무에서도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 개발 공부와 강의에 유용하게 사용된 '워크래프트3' 에디터

 


강사로 살 수 없어! 이제 실전이다
 


'디아블로'가 인도한 서광록씨의 인생에 강사란 직업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자신의 그릇에 걸맞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 결국 기회가 찾아왔고 서광록씨는 죽을 힘까지 쏟아 부으며 성공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성공의 문턱, 결국 체력이 방전됐고 큰 깨달음을 배웠다.

강사로 생활하다 오로라 월드에서 게임 사업을 진행하려 하는데 아는 분을 통해서 초기 멤버로 입사하게 됐다. 전문 지식은 없었으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러 방면에 어느 정도 능력이 있어 많은 것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본래 회사를 설립하면 한정된 인원으로 다방면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그렇게 오로라 월드의 자회사로 오로라 게임즈를 창설하고 기획팀장을 맡았다. 신규 프로젝트로 4개가 있었는데 3개가 무산되고 남은 FPS 게임의 런칭에 온 힘을 기울였다. 부서도 옮겨 마케팅 팀장을 잠시 담당할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것 아닐까.

 

▲ 오로라 게임즈의 첫 번째 타이틀 '유닛 온라인'


다른 프로젝트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FPS 장르의 게임은 서비스를 해볼 만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회사에서는 첫 신작 타이틀이라서 기대도 컸으니까. 그땐 정말 모든 것을 쏟아서 성공을 위해 발버둥쳤다.

결과는 실패였고 피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게임은 실패율이 높은 만큼 성공했을 때 이를 장기적으로 만회할 요소가 충분하다. 하나 실패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다. 하나를 설계하고 이를 개발하며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데, 눈앞에 놓여있는 하나만 바라보면서 내가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다 보니 결국 몸과 마음이 지치고 열정과 의욕이 사라지더라.

그는 모든 것은 경험이라 말한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에 와서 큰 도움이 되었으며, 첫 타이틀의 실패는 자신감과 자만심을 구별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사소한 것이라도 배움과 경험은 언젠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온다는 교훈을 남겼다.

2007년도에 일본계 게임회사를 컨설팅 한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라그나로크'와 '팡야' 등이 성공해서 온라인 게임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를 위해 게임이 필요했는데,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한국에서 이를 찾고 있었다. 목표는 한국에 지사를 설립해 개발을 맡기는 거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온라인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없고 이 분야에서 일을 주도할 인재가 없다 보니까 이를 내가 맡게 됐다. 자문 같은 것을 하게 됐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사람을 구하는 것, 게임사 정보 등을 말이다. 이때 마케팅 분야와 업계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는데, 그게 오로라게임즈에서 FPS 게임을 런칭 하면서 큰 도움이 됐다. 역시 공부를 하면 써먹을 대가 언젠가는 꼭 있나 보더라.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니 서광록씨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벼가 여물어 고개를 숙이 듯, 자심감이 충만했던 아이디어에 겸손함이 더해졌고 모든 것을 성공과 연관 시키는 일차원적 사고방식을 떠나, 실패가 야기할 파장을 생각하게 됐다.

게임을 만들고 싶으나 자신감이 없어져 큰일이다. 옛날에는 기획을 잘하면 좋은 게임이 무조건 나온고 성공과 직결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살다 보니까 이런 연관성은 어디에도 없더라. 기획이 좋다고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이 아니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좋은 기획을 만들 자신은 있는데 이것이 성공으로 이어질 자신감과 확신이 없다.

모바일 분야는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언제든지 도전할 의사가 있다. 구상은 구체적이지 않으나, 계속해서 떠오르면 형상화하고 있다.

최근에 '스스로 필이 오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문구를 접한 적이 있다. 내가 아이디어를 구상하더라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말인데, 지금이 그런 것 같다. 이런 필이 와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일 자신감이 생길 텐데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의 재미를 떠나서 '이건 분명 성공한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

 

기획보다 회계! 관리직을 위한 공부
 

서광록씨는 현재 기획자의 길을 가기보다 주변을 서포트 하면서 성공을 위한 지원군으로 활약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나 넘치지만, 이제는 팀원들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관리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금 회사에서 필요한 것은 내가 앞선 실패를 통해 경험한 부분을 직원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컨트롤하고 서포트 하는 역할이다. 이는 누군가 해야 되는 일인데 마땅히 할 사람이 없다 보니(물론 자의적인 생각이다)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보지 못한 부분을 미리 잡아주고 문서와 같이 귀찮은 업무를 대행하면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업무를 맡았으면 즐거웠을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만들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고 서로 간의 의견 충돌로 일이 지연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일단은 성공을 해야 다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이니, 공부는 미리미리 하자


작년 초에 본격적인 회계 공부를 시작해 재경관리사를 취득했고 지금은 경영지도사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의 정책상 철저한 관리가 주요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재미를 느꼈다. 본래는 숫자 놀음을 좋아하지 않으나, 회계는 논리의 영역이더라. 공부를 하다 보니 몰랐던 부분도 많이 보이게 되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왜 망하는지를 알게 됐다.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나처럼 늙어서 고생하지 말고 미리미리 공부하길 바란다.

서광록씨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배운 것은 언젠가 써먹는다. 그러니 미리 배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는 말이다. 배운 사람은 먼 훗날을 살피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내일을 생각한다. 내일을 생각하며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만이고 미래를 보며 앞날을 논하는 것은 자신감이다.

자신감과 자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만은 대책이 없는 자신감이고 진정한 자신감은 성공과 실패의 모든 것을 감안하고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경영진에게 보고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실패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다. 자만심이 넘치면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이 가득했다. '이렇게 하면 무조건 잘될 겁니다'라는 흐리멍덩한 생각에 취해있었다. 진정한 자신감은 실패를 안고 대비책을 생각했을 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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